
솔직히 저는 9년을 함께 살면서도 고양이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습니다. 세 마리의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서 매일 마주하지만, 그들이 왜 새벽 3시에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지, 왜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등을 돌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했다는 21세기인데도 말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고양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고양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고양이가 말을 한다면, 종간 소통의 가능성
작품 속에서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천재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나면서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피타고라스는 머리에 USB 단자가 꽂혀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습득한 특별한 고양이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종간 소통(Interspecies Communica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종간 소통이란 서로 다른 생물 종 사이에서 의미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는 단순히 반려동물과의 교감을 넘어 상호 이해와 협력의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저도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들이 왜 특정 시간에만 울음을 터뜨리는지, 왜 어떤 날은 저를 피하고 어떤 날은 무릎에 올라오는지 알고 싶습니다. 베르베르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답을 제시합니다. 소설 속 바스테트는 새, 쥐, 물고기, 심지어 인간과도 소통하려는 열망을 품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국 페스트가 창궐하고 내전이 벌어진 파리에서 생존의 열쇠가 됩니다.
종간 소통이라는 개념은 최근 동물행동학과 생태학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돌고래와 인간의 협력 사례, 까마귀의 문제 해결 능력 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동물들이 훨씬 복잡한 사고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베르베르는 이런 현실적 배경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언어적 소통의 가능성을 그려냅니다.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냉정한 시선
소설은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을 보여줍니다. 테러가 일상화되고 내전으로 번지는 파리, 페스트로 황폐화된 도시에서 결국 인간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며 도시를 떠납니다. 반면 고양이들은 무리를 만들어 뺏긴 도시를 되찾기 위해 싸웁니다. 이 대비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제가 고양이들과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반대로 우리는 끊임없이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실패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로 재고,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베르베르는 작품 내내 이런 메시지를 던집니다. 주인공 바스테트가 인간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의아함, 때로는 실망감이 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장 똑똑하다고 믿지만, 정작 전염병과 전쟁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반면 고양이들은 본능과 협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갑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의 연구에 따르면, 생태계 내에서 인간은 단지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며, 인간 활동이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문명을 발전시켜도, 결국 자연 속에서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베르베르의 작품이 던지는 핵심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은 정말로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한가?
-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생명체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생존력을 발휘하는 것은 지능인가, 본능인가?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고양이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밤마다 무엇을 꿈꾸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들을 이해하려고만 했지,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은 없었다는 것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월감을 내려놓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한 송이 꽃이든, 길고양이든, 반려동물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베르베르는 고양이라는 타자의 시선을 빌려 우리에게 이런 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솔직히 이런 책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잠시나마 선민의식을 벗어던지고 겸손해질 수 있는 책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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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ZPOTBDbuLfU?si=pLWSCyb4ZtGLeS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