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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인 책 리뷰 (형식과 본질, 순례 의미, 사랑의 실천)

by vy2006 2026. 3. 14.

두 노인 책 표지

솔직히 저는 톨스토이의 '두 노인'을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한 교훈 이야기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니 100년도 훨씬 전에 쓰인 이 짧은 이야기가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약속한 두 노인의 대조적인 여정을 통해,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형식을 쫓고 있습니까, 아니면 본질을 살고 있습니까?

●형식에 갇힌 예힘과 본질을 산 예리세이

두 노인의 성격 차이는 출발부터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예힘은 신중하고 엄격한 사람으로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고 마을 원로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여기서 '원로(長老)'란 마을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연장자로서 분쟁 조정과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전통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반면 예리세이는 따뜻하고 밝은 성격의 양봉업자로, 술과 노래를 즐기지만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온순한 사람이었죠.

제가 주목한 건 예힘의 집착입니다. 그는 순례 준비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집안일을 걱정했습니다. 풀은 언제 베어야 하는지, 지붕은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아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라는 거룩한 목표를 앞두고도 그의 마음은 오두막 공사에 매여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그는 여행 내내 "집안일은 대체 어떻게 되고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예리세이는 출발하자마자 집안일을 깨끗이 잊었습니다. 그저 친구를 즐겁게 해줄 방법, 평화롭게 여행을 마칠 방법만 생각했죠. 저는 여기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한 핵심을 봅니다. 예힘은 '순례'라는 형식에는 완벽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자비라는 본질은 놓쳤던 겁니다.

●굶주린 가족을 만난 예리세이의 선택

여행 중 예리세이가 물을 얻으러 들른 오두막에서 발견한 광경은 참혹했습니다. 병든 여인이 의식 없이 신음하고, 할머니와 남자는 기력을 잃었으며, 어린아이들은 굶주림에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흉작(凶作)'이란 농작물 수확이 평년보다 극도로 적어 식량 부족이 발생한 상태를 뜻합니다. 실제로 19세기 러시아 농촌에서는 흉년이 들면 가족 전체가 아사 위기에 몰리는 일이 흔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예리세이의 즉각적인 반응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빵을 꺼내 아이들에게 먹였고, 마을가게로 달려가 기장과 소금, 밀가루를 샀습니다. 심지어 나무를 패서 화덕에 불을 지피고 수프를 끓여 첫 식사를 차려줬습니다. 

처음에는 하루만 머물 생각이었지만 예리세이는 사흘, 나흘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죠. "이들을 두고 떠나면 다시 굶주림에 빠질 것이다. 저당 잡힌 땅을 찾아주고, 수레와 말, 밀가루까지 마련해주지 않으면 내 안에 하느님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제가 보기에 이 순간이 바로 예리세이가 진정한 순례를 완성한 지점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물리적 목적지 대신,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 겁니다.

●성묘 앞 환영과 귀향 후 깨달음

흥미롭게도 예힘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세 번이나 예리세이의 환영을 목격합니다. 그리스도의 성묘 앞 가장 신성한 자리에서, 대머리가 후광처럼 빛나며 두 팔을 활짝 펼친 예리세이의 모습을요. 하지만 예힘이 그에게 다가가려 할 때마다 예리세이는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환영(幻影)'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신기루 같은 현상입니다.

귀향길에 예힘은 예리세이가 머물렀던 오두막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예리세이를 "사람인지 천사인지 모르겠다"며 감사해했습니다. 그제야 예힘은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 드린 맹세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멀리 있는 성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곁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저는 이 부분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는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예힘은 아들의 방탕함에 화를 내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예리세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벌들이 후광처럼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두 사람의 순례 결과가 이토록 다른 이유는 명확합니다.

주요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형식적 신앙보다 실천적 사랑이 본질이다
- 목적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를 가린다
-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것이 가장 거룩한 순례다

인간을 이렇게 위대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진즉에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동물적인 면에서 그리 강한 개체가 아닌 인간이 지구에서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리를 지어 사냥하고, 무리를 지어 지혜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각자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결코 달콤하지 않을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100년도 훨씬 전에 던진 질문은 공동체보다 개인이 중요시되는 지금 이 순간, 더욱 절실하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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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gjpiq5mLS_0?si=TMMhAQHjoP83gy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