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수십 년간 땅을 파헤쳤지만 결국 찾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순도 99.99999% 폴리실리콘을 만들 수 있는 고순도 석영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 석영이 생산되는 곳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 파인 단 한 곳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제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얼마나 복잡한 물질의 여정 끝에 제 손에 들어왔는지 깨달았습니다.
●반도체 패권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광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 파인 외곽의 광산은 군사시설에 버금가는 극비 시설입니다. 이곳에서 채취한 석영은 세척과 분쇄, 정제 과정을 거쳐 반도체 공정의 핵심인 초크랄스키 도가니(Czochralski Crucible)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여기서 초크랄스키 도가니란 실리콘 단결정을 성장시키는 고온 용기로, 반도체 웨이퍼 제조의 출발점이 되는 핵심 장비입니다.
광산 관계자는 "누군가 농약을 가득 실고 스프루스 파인 광산에 살포한다면 반년 이내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이 끝장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과장이 아닙니다. 반도체 공급망(Supply Chain)은 단 하나의 고리가 끊어져도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첨단 기술을 보유해도, 이 특정 광산의 석영 없이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는 물질의 세계는 중국이 대만을 침략해 TSMC 반도체 공장들을 확보해도 패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분석합니다. 미국이 자국의 고순도 석영을 공급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기술 패권이 결국 물질 자원의 지배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문명을 떠받치는 여섯 가지 물질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는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여섯 가지 물질을 통해 인류 문명사를 재구성합니다. 고대부터 이어진 1만 년의 기술로 불리는 유리 제조부터, 도시의 마천루 재료인 콘크리트까지 모두 모래에서 출발합니다. 소금이 없다면 식량의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코로나19 백신 같은 의약품도 만들 수 없습니다.
부유한 국가는 1인당 평생 15톤의 철을 소비합니다. 구리에서 전력망이 탄생했고, 칠레 아타카마 소금 사막에서 정제된 리튬이 테슬라의 기가팩토리에서 2차 전지가 됩니다. 2019년 한 해 채굴된 광물량은 인류 초기부터 1950년까지 캐낸 총량보다 많았습니다. 이 수치를 보고 저는 현대 문명이 얼마나 물질 의존적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조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광물은 더 저렴하게 제공됩니다. 리튬 배터리 가격은 1991년 대비 97% 하락했고, 태양광 모듈은 40년 전보다 500배 저렴해졌습니다. 하지만 에드 콘웨이는 경제성장을 위한 에너지 소비와 전 세계 탈탄소화 목표가 충돌 직전이라고 진단합니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낮추려면, 재생 에너지 전환을 위해 지난 500년간 채굴한 구리보다 더 많은 양을 캐야 합니다.
주요 물질별 역할과 중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모래: 반도체, 유리, 콘크리트의 기본 원료
- 소금: 식량 생산, 의약품 제조의 핵심 화학 원료
- 철: 건축, 기계, 자동차 등 현대 산업의 뼈대
- 구리: 전력망 구축의 필수 도체 금속
- 석유: 에너지원이자 화학 산업의 근간
- 리튬: 2차 전지의 핵심 소재, 전기차 시대의 중심
●디지털 경제는 물질 세계의 희생으로 작동한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하버드 케네디 스쿨 출신으로, 영국 스카이뉴스 경제 전문 기자이자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입니다. 그는 취재 중 방문한 한 광산에서 자신의 결혼반지를 만들기 위해 적게는 4톤, 많게는 20톤의 광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이 『물질의 세계』 집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책은 과학, 역사, 지정학적 단층선을 넘나들며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물질의 여정을 추적합니다. 저자는 미국 네바다주 코르테즈 광산에서 산 전체를 폭파하여 금을 채굴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금을 얻기 위해 이런 파괴 행위를 한다면, 정말 필요한 물질은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5달러 중 4달러가 서비스 부문에서 나오지만, 소셜 네트워크부터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물질적 하부 구조에 의존합니다. GDP(국내총생산)는 인스타그램에 쓰든 먹을거리에 쓰든 똑같은 돈으로 취급하지만, 물질 세계의 가치는 가격만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시장가격은 중요성의 등가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반도체가 모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실리콘 칩은 채석장에서 폭파된 주먹 크기 돌이 지구를 여러 번 돌며 정제, 가공, 조립 과정을 거쳐 스마트폰 안에 안착합니다. 레너드 리드가 1958년 쓴 에세이 「나는 연필이다」처럼, 일상 용품 하나에도 수백만 명이 참여하지만 전 과정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에드 콘웨이는 앞으로 수십 년간 인류가 평탄치 않은 도전의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환경을 보호하려면 화석 연료를 줄여야 하지만,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을 만들려면 더 많은 광물을 채굴해야 하는 역설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물질 세계의 시민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물질 소비를 몇 배나 늘리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짧아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구리와 코발트, 리튬을 땅에서 끄집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물질은 문명을 떠받치는 뼈대입니다. 물질 없이 인류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디지털 경제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물질 세계에 대한 인식과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저자가 찾아낸 미래의 실마리도 결국 물질 세계에 대한 인류의 새로운 상상력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물건 하나하나에 숨겨진 물질의 여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 https://youtu.be/xp3MukWWHFw?si=lSWxh5oBBXseh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