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 책을 읽고 토론회를 열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 성장 이면에 감춰진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팽배했기 때문이죠. 저 역시 당시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다수의 발전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정의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원칙을 정의의 기준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공리주의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보는 윤리 이론을 의미합니다. 제러미 벤담으로 대표되는 이 사상은 단순 명쾌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선택이 곧 정의라는 것이죠.
하지만 제 경험상 현실에서 이 원칙을 적용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미뇨네트호 사건을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884년 남태평양에서 표류하던 선원들이 생존을 위해 병든 어린 선원 파커를 희생시켜 그의 살과 피로 목숨을 이어간 사건입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한 명의 희생으로 세 명이 살았으니 옳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보완하여 질적 공리주의를 제시했습니다. 쉽게 말해 행복에도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다"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정신적 즐거움이 물질적 쾌락보다 더 가치 있다고 본 것이죠.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셰익스피어 연극과 심슨 가족을 비교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만화를 본다고 해서 그것이 셰익스피어보다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들에게 정의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간섭 없는 자유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모병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군인이 되면 학자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니, 자발적으로 선택한 거래라는 논리죠.
그러나 이것이 정말 자유로운 선택일까요? 통계를 보면 미국 모병 지원자의 70%가 저소득층 출신입니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선택한 것을 진정한 자유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자유지상주의의 근본적인 한계를 봅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개인의 선택은 자유롭지 못하게 되니까요.
대리모 계약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인도 아난드 지역에서는 50여 명의 여성이 미국과 유럽 부부를 위해 대신 출산을 했습니다. 이들이 받은 돈은 4,500~7,000달러로 인도 여성이 15년 일해야 버는 금액이었죠. 자유지상주의자는 이를 자발적 계약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제 생각에 이는 경제적 강제에 가까워 보입니다.
●칸트와 공동체주의의 대안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에 접근합니다. 여기서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인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란 어떤 조건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도덕 법칙을 의미합니다.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입니다.
2004년 전국 철자 맞추기 대회에서 우승한 13세 소년 앤드루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심사위원이 자신의 실수를 놓친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저는 철자를 잘못 말했어요. 그러니 저는 1등할 자격이 없습니다." 앤드루는 나중에 "추잡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습니다.
칸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 동기는 완전히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도덕적이려면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행동해야 하니까요. 솔직히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저는 칸트가 너무 엄격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니 그의 주장이 인간 존엄성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리모 계약이나 장기 매매가 문제인 이유입니다. 생명과 출산을 상품화하는 것은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ROE(자기자본이익률)나 비용 편익 분석처럼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는 경제적 사고방식으로는 인간 존엄성을 제대로 다룰 수 없습니다. 여기서 ROE란 기업이 주주의 돈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재무 지표입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들에게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common good)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공동선이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통의 가치와 목표를 뜻합니다. 개인의 권리만 강조하는 자유주의나 행복 계산에만 몰두하는 공리주의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죠.
샌델 교수가 제시하는 공동선의 정치를 위한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민 의식과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2. 시장주의의 도덕적 한계를 인정하고 일부 가치는 시장에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3. 소득과 부의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4. 도덕과 가치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특히 두 번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를 보면 교육, 의료, 주거 등 기본적인 삶의 영역까지 시장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조차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연대 의식을 무너뜨립니다. 필립 모리스 담배회사가 체코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흡연으로 인한 조기 사망이 연금 지출을 줄여 정부에 이득이라고 계산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비용 편익으로 따지는 순간, 우리는 도덕적 토대를 잃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적 접근에 공감합니다. 물론 공동선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자유가 너무 제한되어서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연대가 무너져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저소득층 출신이 대부분인 군 지원자 통계나, 경제적 궁핍 때문에 대리모가 되는 여성들의 현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도덕적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선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정의에 대한 완벽한 답은 없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점입니다. 기술과 경제가 발전해도 이런 근본적인 가치 논의 없이는 진정으로 진보된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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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r5FoGBNMY78?si=X1DyIx46QHPGtYs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