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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책 리뷰 (환경 결정론, 농업 확산, 병원균)

by vy2006 2026. 3. 7.

총균쇠 책 표지

솔직히 저는 『총 균 쇠』를 처음 펼쳤을 때 '왜 이렇게 읽기가 힘들까' 싶었습니다.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밀과 보리, 가축의 이동 경로 같은 이야기가 몇십 페이지씩 이어지니 집중력이 흐트러지더군요. 하지만 참을성을 갖고 읽다 보니 이 책이 던지는 질문 하나가 제 안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왜 어떤 민족은 다른 민족을 정복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흔히 우열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인종 간에도, 개인 간에도 그렇게 말하죠.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바로 그 고정관념에 날카로운 일침을 놓습니다.

●문명 격차는 환경이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이유'를 설명할 때 지능이나 인종의 우열을 거론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전혀 달랐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유라시아 대륙(Eurasia)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유라시아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대륙 덩어리를 의미하는데, 이 대륙은 위도(latitude)가 비슷한 지역이 동서로 이어져 있어 기후 조건이 유사합니다. 쉽게 말해, 밀과 보리 같은 작물이 한 지역에서 잘 자라면 비슷한 기후대를 따라 동쪽이나 서쪽으로도 쉽게 퍼질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반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대륙입니다. 멕시코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더라도 북쪽으로 가면 한대 기후, 남쪽으로 가면 열대 우림이 펼쳐지기 때문에 같은 작물을 그대로 옮겨 심기 어려웠죠. 이런 대륙의 방향(continental axis) 차이가 농업 확산 속도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았고, 그 결과 유라시아에서는 농업이 빠르게 정착하면서 잉여 식량이 생겼고 인구가 늘어났으며 국가 조직이 일찍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대륙 모양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 단순해 보이는 지리적 차이가 수천 년에 걸쳐 누적되면서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작은 환경 차이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과소평가하기 쉽더군요. 책은 그 과소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또 한 가지 핵심은 가축입니다. 전 세계 대형 포유류 수천 종 가운데 인간에게 길들여진 동물은 고작 14종 정도인데, 그마저도 대부분 유라시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말, 소, 양, 염소, 돼지 같은 가축은 밭을 갈고 짐을 나르고 사람을 빠르게 이동시키며 전쟁의 양상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아메리카에는 라마가 있었지만 말처럼 전쟁과 운송을 동시에 혁신할 수는 없었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륙의 동서 방향 배치는 작물과 가축의 확산 속도를 결정했다
- 유라시아는 농업 혁명(Agricultural Revolution)이 빠르게 일어나 인구 증가와 국가 형성으로 이어졌다
-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 배치로 인해 기후 장벽을 넘기 어려웠다

여기서 농업 혁명이란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역사적 전환점을 말합니다. 이 혁명은 단순히 먹거리가 늘어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잉여 식량이 생기면서 일부 사람들은 식량 생산이 아닌 다른 일(금속 가공, 문자 개발, 군사 기술 등)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문명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병원균이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균(germs)'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가 인카 제국을 무너뜨렸을 때, 우리는 흔히 총과 말, 강철 무기의 위력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카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인 건 천연두(smallpox), 홍역(measles), 독감(influenza) 같은 병원균이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황제조차 병으로 먼저 죽어갔죠.

왜 유럽인의 병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량으로 죽였는데, 반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답은 역시 환경에 있었습니다. 유라시아 사람들은 수천 년간 소, 돼지, 닭 같은 가축과 함께 살았고, 그 과정에서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병이 옮겨왔습니다. 처음엔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조금씩 면역(immunity)을 획득했습니다. 여기서 면역이란 특정 병원체에 대항할 수 있는 신체의 방어 능력을 뜻합니다. 이 면역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수백 년에 걸쳐 집단 전체에 축적되었습니다.

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대규모 가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동물 유래 전염병에 노출될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이 가져온 병원균은 완전히 낯선 재앙이었고, 싸울 기회조차 없이 쓰러졌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원주민 인구의 80~95%가 몇 세대 안에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과연 정복이란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쟁터에서의 승리를 정복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 먼저 문명의 토대를 무너뜨렸고 군대는 그 빈자리를 차지했을 뿐이었습니다. 이건 유럽인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죠. 그저 환경이 만들어 낸 우연한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문자(writing system)와 국가 조직의 역할입니다. 총과 균만으로는 대륙 규모의 지배가 불가능합니다. 유라시아에서는 문자가 일찍 발달하면서 세금 징수, 군대 배치, 물자 관리가 기록으로 축적되었고, 국가는 기억이 아니라 문서 위에서 작동하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의 경험이 지식으로 쌓이면서 다음 세대에 계승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반면 문자가 제한적이었던 사회에서는 이런 지식 축적이 어려워 국가의 확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이 책은 문명의 격차를 사람의 우열이 아니라 환경 조건으로 설명합니다. 작물, 가축, 대륙의 방향, 병원균, 문자. 이 모든 요소가 맞물려 어떤 대륙은 정복자가 되었고 어떤 대륙은 정복당하는 쪽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불평등이 사실은 수천 년 전 환경의 우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의 불평등이 환경에서 시작되었다면, 미래의 불평등은 우리의 선택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을 만들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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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irtFSEqgxnI?si=wDMYJiecWMJM3e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