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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데우스 책 리뷰 (인간의 정의, 데이터교, 무용계급)

by vy2006 2026. 3. 9.

호모데우스 책 표지

일반적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풍요와 편리함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기근, 전염병,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읽으며 느낀 건, 이 승리가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희는 지금 생존을 넘어 신이 되려는 욕망 앞에 서 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정의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

저희는 오랫동안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정의해왔습니다. 하지만 생명과학과 신경과학의 발전은 이 믿음에 균열을 냅니다.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결정이 생화학적 알고리즘(biochemical algorithm)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알고리즘이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는 일련의 계산 과정을 의미합니다.

제가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것도,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사실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일 뿐이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마음이 우리를 움직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 수치가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 놀라운 건 인공지능의 발전입니다. AI는 의식(consciousness)이 전혀 없으면서도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보여줍니다. 의식이란 주관적인 경험, 즉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사고를 완벽하게 회피하고, 의료 AI는 공감 능력 없이도 인간 의사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립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저는 묻게 됩니다. 지능과 의식이 분리될 수 있다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 경험상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던 지적 능력은 이미 많은 영역에서 기계에게 넘어갔습니다. 남은 건 느끼는 능력뿐인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에서 감정은 점점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데이터교라는 새로운 종교

과거 인류는 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했고, 근대 이후에는 인간의 경험과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인본주의(humanism)가 지배했습니다. 인본주의란 인간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사상 체계입니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이 바로 인본주의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지금 목격하는 건 데이터교(Dataism)라는 완전히 새로운 믿음 체계의 등장입니다. 데이터교는 우주를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모든 존재의 가치를 데이터 처리 기여도로 평가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 역시 매일 수십 번 휴대폰을 확인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제 모든 행동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요.

데이터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대한 정보 처리 시스템의 작은 부품에 불과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화가 제 취향에 완벽하게 맞았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 내면의 목소리보다 알고리즘이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았거든요.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데이터 생산에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SNS에 일상을 올리고, 웨어러블 기기로 건강 정보를 기록하고, 검색 엔진에 모든 궁금증을 털어놓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 생산량은 연간 120제타바이트(ZB)를 넘어섰습니다.이는 5년 전보다 약 3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무용계급의 탄생

일반적으로 기술 발전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과거의 산업혁명과 달리, 인공지능은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적 노동까지 대체하고 있습니다. 하라리가 경고하는 무용계급(useless class)이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시스템에 기여할 수 없는 잉여 인간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착취의 대상이었기에 최소한의 가치는 인정받았습니다. 공장을 돌리려면 노동자가 필요했고, 전쟁을 치르려면 병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무인 드론과 AI가 이 역할을 대신하는 미래에는 대다수 인간이 시스템 유지에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생물학적 격차입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를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지능과 체력을 업그레이드받은 초인류가 등장할 것입니다. CRISPR란 DNA의 특정 부분을 정밀하게 잘라내고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입니다. 부유한 소수만이 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유전자 치료 비용은 건당 평균 200만 달러를 넘습니다. 이런 격차 속에서 평범한 사피엔스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요? 주요 우려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경제적 무용성: AI가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하면서 실업률 급증
- 생물학적 격차: 유전자 편집 기술을 독점한 초인류의 등장
- 사회적 소외: 기본소득으로 생존은 보장되지만 존재 의미 상실

솔직히 이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의미 자체가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하라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입니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욕망까지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의 선택이 정말 우리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 어느새 제 관심사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유도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다움이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능과 효율성으로는 기계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고,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만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약함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봅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신과 같은 능력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졌던 따뜻함과 공감, 서로를 보듬는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진정한 진화가 아니라 퇴보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효율성보다 의미를, 데이터보다 경험을, 완벽함보다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연결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미래를 원하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함께 묻고 고민하는 한, 미래는 아직 우리 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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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xjICQ0tiV9k?si=x_m1ksBSbR-Wew8H